그림그리는사람 백지혜

백지혜 작가와의 대화 (2013)

Added on by Jongchul Jang.

손세희 (독립 큐레이터)

십 년은 되었지 싶다. 백지혜 작가를 알게 된 게. 그후 드문드문 서로 소식을 주고 받곤 했다. 그 동안 작가는 한국화에 대해 더 배우고 싶다며 대학원에 들어가 전통진채화를 공부했고 여러 차례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단체전에도 참가했다. 책도 냈고 일반인들을 위한 동양화 그림반도 만들었다. 가만히 보면 참 부지런히도 새로운 시도를 하고 꾸준히 그림을 그려왔다 싶다. 그런 작가의 새 작품이 궁금해 웬만하면 작가의 전시는 다 가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때마다 동심을 떠올리게 하는 소녀 시리즈와 잔잔한 꽃 그림들을 만났다. 한 올 한 올 세밀히 그려진 머리카락과 수십 번의 붓 놀림으로 겹겹이 쌓은 색들은 작가의 공을 짐작하게 하는 동시에 보는 이들을 어느새 명상적이 되게 한다. 소근소근 속삭이듯 이야기하는 작가의 그림은 조용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한 발짝 바짝 더 다가서게 된다. 백지혜 작가의 작품이 자꾸만 궁금해지는 이유이다.

 

손세희: 백지혜 작가에게 동양화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백지혜: 저한테 제일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건 재료예요. 벼루에 먹을 갈고 접시에 손가락으로 물감을 개어 쓰는 것도, 화선지나 순지에 먹과 물이 닿아 생겨나는 현상들을 경험하는 것도 다 새로웠거든요. 동양화에서의 재료의 활용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해요. 또 하나는 여백이라 불리는 빈 공간에 대한 매력이에요. 어릴 적부터 학교나 미술학원에서 화면을 꽉 채워야 한다고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부담감이 항상 존재했었어요. 동양화를 배우면서 화면을 다 채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무슨 해방감까지 느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색과 색을 조합하는 데서 재미를 느껴요. 서양화와 동양화를 비교했을 때 아무래도 쓰는 재료와 물감이 다르니 색감에 차이가 있어요. 제게는 서양화의 색이 상당히 강하게 느껴졌는데, 그에 비해 동양화의 색은 차분하고 은은해서 제 성격과 잘 맞는 것 같아요.

 

높은 완성도의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소재의 선택, 재료의 준비부터 배접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단계가 없을 텐데요,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제일 신경 많이 쓰는 부분은 밑그림이에요.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처음으로 화면으로 옮기는 단계이기 때문에 가능한 한 밑그림에 공을 많이 들이죠. 그 다음에는 색을 만드는 데 신경을 많이 써요. 사람의 피부색이라도 그 대상에 딱 맞는 피부색을 찾는다든가. 사실 의상도 제가 중요하게 생각을 하는 요소 중 하나인데 그건 그 장면을 최대한 완벽한 이미지로 만들어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에요. 예를 들면, 그 상황에 어울리는 옷 무늬를 그려 넣기도 하죠.

 

 

 

작가노트에서, 첫 개인전을 “매일매일 반복되는 바쁜 삶 속에서 나도 모르게 무심히 지나쳐 버리는 일상의 작은 풍경들”이 전해 주는 “작은 이야기들을 찾아나서는 긴 여행의 시작”이라고 비유하셨어요. 그 후 십일 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 여정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일종의 중간 점검을 한다면, 그 여정에서 어떤 것들을 찾으셨나요?

결국은 일상에서 놓치고 있는 작은 부분들인 거 같아요. 처음에는 옛날 기억을 떠올려 이야기를 만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평소 느끼는 감정들을 조금 더 편하게 그림 안에 가져와요. 저에게 찾아오는 감정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요. <봄이 오는 소리>에서는 한 소녀가 꽃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이건 제가 어른이 돼서 경험한 거예요. 어른이 되면 쉽게 무뎌진다고 하잖아요. 그렇지만 저는 그런 소소한 감정들이 어른들에게도 남아있다고 생각해요. 그림에서는 주인공이 모두 소녀로 표현이 되었지만 어린 시절 기억과 함께 어른이 되어 일상에서 경험한 이야기들도 있어요.

 

기억, 추억이라는 것이 작가에게 무척 중요한 개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현재에 대한 감정도 그게 기억하고 싶은 것이기 때문에 소중한 거고요.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는 것 같아요.

네. 제가 어떤 장면을 남긴다는 것에는 그게 기억되어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있어요. 화병에 꽂힌 꽃도 아름답지만, 저는 마당의 꽃, 동네의 꽃, 골목의 꽃을 더 많이 그리게 돼요. 그건 그 꽃들이 살고 있는 환경 자체를 담고 있기 때문이에요. 안타깝게도 서울에서는 마당, 동네, 골목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이제는 아파트에서 태어나 자라고 그 곳에서 생을 마감하는 세대가 나오겠죠. 그런 사람들한테도, 또 저처럼 어릴 적 동네의 추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제 그림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지금보다 그때가 꼭 더 좋았다라기보다, 그냥 이런 풍경들이 있었다, 이런 꽃들이 자라났었고, 마당에는 이런 강아지가 있었다,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소녀 이야기도 같은 맥락인데, 한번 지나온 소녀시절은 다시 돌아갈 수가 없죠. 단순히 과거를 추억한다기보다 잊혀져 가는 것을 남기고 싶고 잊고 지냈던 사람들에게 그림을 통해 기억을 돌려주고 싶어요.

 

소재가 평화롭고 밝아요.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치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요즘 동시대 많은 미술가들이 비판적인 작품을 많이 하는데 이런 주제에 관심을 가져본 적은 없으신가요?

소재가 너무 일상적이지 않느냐, 이런 그림은 누구나 그릴 수 있지 않느냐 하는 소릴 들을 때가 있어요. 사실은 그게 제가 원하는 거예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죠.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거든요. 생각해보면 별거 아닌 일상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 때가 있어요. 저는 작은 걸 이야기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바쁜 일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제 그림이 휴식 같았으면 좋겠고요. 첫 번째 개인전을 할 때였는데, 아침에 문을 열자 마자 한 중년의 여성분이 들어오시더니 그림을 한참 동안 보다 나가시는 거예요. 한 시간 후에 포장된 오미자 차를 한 병 가져와 주시면서, 오늘 안 좋은 일이 있었는데, 그냥 화랑 문이 열려 있어 들어와 본 그림이 위로가 되었다 하시며 그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가게에 가서 오미자 차를 사오셨다는 거예요. 제가 그림 그리길 잘 했다고 느낀 순간이었어요.

 

인물화에 나오는 대상들을 가만히 보면 다들 뭔가에 열중하고 있어요. 기차를 ‘그리고 있는’ 아이, 소근소근 귀엣말을 ‘속삭이고 있는’ 소녀들, 공기놀이를 ‘하고 있는’ 소녀들. 마치 한 컷의 스냅사진처럼, 그림 속 이미지는 ‘현재 진행형’이죠. 어느 인물도 그림을 그리는 화가나 관람자를 응시하지 않아 그런 느낌이 더 많이 드는 것도 같고요. 그림은 그 진행형의 ‘순간’을 사라지지 않는 물리적 흔적으로 영원히 남기려는 시도처럼 보이는데요.

이야기를 가지고 제가 장면을 풀어내기 때문인 거 같아요. 한 장면을 그리더라도 그 안에 담겨있는 이야기가 있거든요. 그게 드러나는 거 아닐까 해요. 대상이 화면을 응시하지 않는 건 의도한 건 아닌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아이들 사진을 먼저 찍는데, 사진 찍기 전에 아이와 실컷 놀아줘요. 그리고 그 사이사이 사진을 몰래 찍죠. 사진을 찍을 때 카메라를 바라보는 아이들은 그 순간 카메라를 의식하는 감정이 드러나잖아요. 제가 그걸 원하지 않거든요. 그러다 보니 카메라를 응시하는 모습은 자연스럽게 제외되는 거죠. 저는 관객들이 온전히 그림 속에서 노는 아이들에게 집중했으면 좋겠어요.

 

주요 대상인 인물(들)과 그 인물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한두 가지의 주요 소품을 제외한 주변은 완벽하게 생략된 채 빈 공간으로 남겨지는데, 여백의 미를 중시하는 동양화의 전통 때문인가요?

꼭 그렇다기보다는 불필요한 건 과감하게 생략을 해서 주제에 집중을 할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최근에 제가 인물의 표정을 묘사하는 데 힘을 기울이는데 관객들이 어떤 방해 없이 그 표정에서 감정을 읽을 수 있기를 바라는 거죠. 또 하나는 화면 구성에 있어 어느 부분은 강하게 어느 부분은 느슨하게 해서 긴장감을 주려고 노력해요. 여백은 그림을 보는 사람에게 생각할 여지를 주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공간이기도 하고요. 물리적 화면에 담기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여백 뒤 펼쳐진 무한한 공간은 그림 속 이야기가 확장되는 곳이기도 한 거죠. 그래서 밑그림을 가지고 이쪽 공간을 열어놨다가 저쪽 공간을 열어놨다가 하면서 고민을 많이 하고, 그림을 다 그린 후 그림을 잘라내는 과정에도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종이보다 다루기가 몇 배 더 까다로운 비단을 이용하는 이유가 있나요?

비단, 모시, 삼베, 종이를 다 쓰고 있는데, 그때그때마다 머릿속에 생각하고 있는 이미지를 제일 잘 표현할 수 있는 바탕재료를 결정해요. 종이에서 얻을 수 없는 색감 때문에 비단을 요즘 더 많이 쓰고 있긴 하고요. 초상화 공부를 하면서 비단에 배채(背彩, 비단이나 종이의 뒷면에 색을 칠해 앞면에 비쳐 나오게 하는 것. 실제로 앞면에만 색을 칠하는 것과는 색감의 차이가 있다.)를 이용해서 작업을 하는 게 색의 깊이를 더해준다는 점에서 저한테 흥미를 가져다 주었어요. 비단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과정이 무척 고되고 종이보다 손이 많이 가는 건 사실인데 비단에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순간의 느낌 자체를 제가 또 좋아해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여성의 이야기를 좀더 적극적으로 하고 싶어요. 우리나라 회화사에서 여성의 초상은 부인상, 모자상, 아니면 기생의 모습이 대부분이었어요. 저는 감정의 주체로서 여성을 그리고 싶어요. 그게 제가 그려온 소녀시대와도 맞물려 있고요. 저를 포함한 친구들이 3-40대가 되면서 누군가는 결혼을 하고, 누군가는 아이 엄마가 되고, 누군가는 직장인이 되고 하는 삶의 변화를 많이 겪게 되었는데, 그들의 이름을 찾아내주고 싶고, 그 모습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